ㆍ돈공부
가상화폐도 증권인가요?
‘가상화폐는 진짜 화폐인가’라는 질문은 지난 2017~2018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화두 중 하나였습니다. 정규방송에서 이를 주제로 한 전문가들의 긴급토론이 편성되었고, 이 프로그램은 이례적으로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것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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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20년부터 다시 시작된 가상화폐 랠리과정에서는 이런 논쟁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최근 대부분 투자자들은 가상화폐를 화폐로 인식하기보단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 정도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골드만삭스니 JP모건이니 하면서 이름만 대면 다들 아는 금융회사들이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고 하니 말입니다.
국내에서도 투자자들이 늘어나다 보니 금융시장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가 나서서 가상화폐시장에 대한 규율을 바로잡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가상화폐를 주식, 채권 등과 같은 증권*(Security)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 생겨납니다. 불행하게도 국내에선 가상화폐가 자본시장법 상에 규정조차 되어 있지 않아 증권인지 여부는 고사하고, 투자할 만한 자산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도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증권
: 주식이나 채권 등 재산적인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자산이나 이익 분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부여한 증서
반면 전 세계 금융의 허브(Hub) 역할을 하는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어왔고, 지금 우리의 금융위원회에 해당되는 미국 금융감독당국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독자적인 유권해석에 따라 증권에 해당되는 가상화폐에 대해선 연방 증권거래법에 따라 강도 높은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미 SEC는 지난 70년 이상 ‘특정 금융투자상품이 증권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잣대로 ‘하위 테스트(Howey Test)’라는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위 테스트는 1946년 미국 플로리다에 오렌지 농장을 가진 W. J. 하위라는 농장업체가 SEC와 벌인 법적 공방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판결을 준용한 기준입니다.
당시 하위 측은 플로리다 오렌지 농장에서 직접 경작해 생산된 오렌지를 내다 팔아 이익을 냈지만, 농장 절반만 직접 소유했을 뿐 나머지 농장 땅 절반은 미국인들에게 쪼개서 분양해 팔았습니다. 이때 농장 땅 절반을 분양 받은 개인들은 농장에서 직접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대부분이 투자 목적이었습니다. 이를 간파한 하위 측은 더 비싸게 땅을 팔기 위해 투자하는 개인들에게 ‘농장에서 재배하는 농작물 작황에 따라 수익금을 더 주겠다’는 계약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이 부동산 계약에 대해 SEC는 “투자에 따른 수익을 보장한 만큼 증권 투자계약으로 봐야 한다”면서 미리 SEC에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은 하위 측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했습니다. 이 재판에서 연방 대법원도 “하위가 소유한 농장의 수확물 역시 분양된 농장 수익과 연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투자계약 또는 증권으로 볼 수 있다고 판결해 SEC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이 유권해석에서 대법원이 증권으로 판단한 하위 테스트의 네 가지 기준은 ① 자금 투자가 이뤄지고(Investment of money), ② 그 자금이 공동사업에 투자되고(In a common enterprise), ③ 투자에 따른 이익을 기대할 수 있고(With an expectation of profits), ④ 그 이익은 타인의 노력으로 발생된다(From the efforts of others)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제이 클레이튼 전 SEC 위원장은 한 강연에서 가상의 ‘세탁기 토큰’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그는 “옷을 빨기 위해 세탁기를 돌려야 할 때 동전처럼 투입하는 세탁기 토큰이 있다면 이는 증권이 아니지만, 내년에 오픈하게 될 세탁소에서 쓸 수 있는 토큰을 지금 미리 팔면서 ‘내년엔 가격이 더 뛸 거야’라는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면 이는 증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기준에 따라 SEC는 한때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3위까지 올랐던 리플(Ripple)사의 리플코인(XRP)을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제소했고, 지금 재판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동일한 잣대로 이미 발행되어 거래되고 있는 많은 가상화폐들도 SEC로부터 철퇴를 맞을지 모릅니다.
아직은 기준 자체가 없지만, 우리 금융당국도 앞으로 SEC의 판단 기준을 따를 가능성이 높은 만큼 투자하기 전에 증권에 해당할 만한 코인이나 토큰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상화폐가 증권으로 인정받는다면 그 자체로 주류 금융시장에 편입되었다는 뜻이지만, 그만큼 강화된 투자자 보호 장치나 투명한 공시 강화 등 뒤따르는 책임과 부담도 커진다는 걸 잊어선 안 될 겁니다.
비트코인 초보자를 위한 꿀팁
: 최근 가상화폐가 주류 투자자산으로 널리 인정받으면서 그 지위가 높아졌지만, 그런 만큼 져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습니다. 가상화폐를 증권으로 봐야 하는지 여부에 대한 기준이 이미 확립된 미국에서는 증권거래법 위반 여부를 따지는 법적 분쟁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이에 대비한 투자 전략을 짜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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