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써먹는 독서
Short 짧게, 끊어 쳐라. 기본이다. 누구나 안다. 문제는 ‘정도’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끊어 쳐야 할까. 글쓰기 강의를 하다보면 이 끊어 치기의 1계명을 대부분 ‘1형식(주어+동사)’의 나열로 받아들인다. 예문처럼 강렬하게 말이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 김훈 <칼의 노래> -
가슴을 쿵! 하고 때린다. 군더더기도 없다. 주어, 동사 하나로 올킬이다. 하지만 요즘 글쓰기, 달라졌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끊어 치기가 이뤄진다. 그러니깐 이런 식. 주어, 동사의 나열도 길다. 아예 동사+동사가 반복되거나, 단어+단어로 끊긴다. 인수분해를 통해 문장을 끊을 수 있는 만큼 끊어놓는 거다. 세상에나. 그런데, 묘하다. 이런 끊어짐에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다. 필자가 쓴 여행기를 한번 볼까. 일본 아오모리현의 명물, 남녀혼탕 체험기다.
벗었다. 홀라당. 아니다. 수건으로 중요 부위는 가렸다. “괜찮겠어요?” 같이 온 기자가 다짐하듯 묻는다. “뭐, 어때요” 애써, 담담한 척이다. 맞다. 이럴 땐 방법이 없다. 뻔뻔해져야 한다. 심호흡. 드르륵. 문을 연다. 무려 40년. 그 기간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왔던 판도라 상자, 남녀혼탕의 문. 그게 열린다. 아뿔싸. 그런데, 이게 뭐야. 뿌옇다. 탕 안도, 물속도.
남녀칠세부동석?? 350년 묵은 혼탕!! 350년 역사의 남녀혼탕 쓰카유. 아오모리현의 명물이다. 세상에. 속았다. 이건, 아니다. 얼마를 기다렸는데.
- ‘은밀하게 화끈하게 설탕 투어’ 중 -
자, 다시 글을 뜯어보자. 첫 문장부터 주어가 없다. [벗었다] 끝이다. 다음은 [홀라당] 단어가 한 문장이다. 세 번째 문장에도 주어가 없다. [수건으로 중요 부위는 가렸다]라니. [가렸다] 서술어의 주어가 없다. 굳이 필요 없으니 덜어낸 거다. [괜찮겠어요?] 4번째 문장을 지나, 5번째 문장에 가서야 주어 하나 [같이 온 기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또 주어가 없다. [애써, 담담한 척이다. 맞다.]까지. 그리고 다음 문장들은 놀랍게 또 끊어간다. [심호흡. 드르륵.]
사실 이 글은 실험적인 시도였다. 여행기의 전체를 이끄는 리드문, 뭔가 특이하고 재밌게 구성해볼까 하다, 끊어 치기의 극한까지 가보자, 이 시도를 한번 해 본 셈이다. 데스크(기자들은 부장이라 불리는 데스크에게 빨간펜 강제교열을 당한다)의 반응은 이랬다.
“햐, 도저히 손을 댈 수 없게 글을 썼구나.”
맞다. 이 정도 반응이면 성공이다. 데스크조차 혀를 내두르게, 손 댈 수 없게 글을 끊어 쳤으니. 예시를 보셨으니 이쯤에서 첫 계명 끊어 치기 신공, 제대로 정리하고 가자. 이름하여 업드레이드된 ‘현대판 끊어 치기 신공 3계명’ 되시겠다.
1. 기계적으로 끊어라
마치 주식거래 손절(손실 났을 때 끊는 기술) 기술 같다. 그냥, 짧게 써야 한다는 인식 정도로는 안 된다. 그저 끊어야 한다. 딱딱. 기계적으로. 글 잘 쓰는 기자 Top 3에 꼽히는 <한겨레> 출신 안수찬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끊어 치기는 만병통치약’이다. 퓰리처상 받을 만큼 멋진 기사문을 쓰고 싶은가? 끊어 쳐라. 멋진 소설을 쓰고 싶은가? 잘라라. 100만 클릭을 부르는 환상적인 글을 쓰고 싶은가? 기계적으로 끊어 쳐라. 문맥? 흐름? 다 필요 없다. 그저, 끊어 치면 된다.
2. 1형식도 길다! 더 잘라라
끊어 쳐라! 주어+동사의 1형식으로 잘라야 하나? 천만에다. 형식도 문장도 필요 없다. 그저 끊으면 된다. [아]하는 감탄사 한 글자, [맞다]하는 리액션 단어까지 한 문장이 될 수 있다. 다시 필자가 쓴 남녀혼탕 글을 잠깐 보고 가자.
맞다. 이럴 땐 방법이 없다. 뻔뻔해져야 한다. 심호흡. 드르륵. 문을 연다. 무려 40년. 그 기간 학수고대하며 기다려왔던 판도라 상자, 남녀혼탕의 문. 그게 열린다.
이런 식이다. 감탄사·서술어·부사·형용사도 한 문장이 될 수 있다. 과감히. 무자비하게 잘라야 한다. 나누고 나누는 인수분해의 끝처럼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때까지 과감히 끊어보시라. 그때야 느낀다. 턱턱 끊기면서 문장이 막히는 게 아니라, 문장이 뻥 뚫리는 흐름을.
3. 숲의 흐름을 놓치지 마라
끊어 치기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너무 끊다 보면 흐름을 놓친다. 끊는 것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글의 전개가 엉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끊어 치면서 늘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숲이다. 전체 글의 흐름, 즉 숲의 형태는 항상 생각하고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