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꿀팁
신장과 비장을 동시에 보강하는 퇴계의 음식
덩굴식물 중에 대단한 약으로 마(薯, 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각 지방에서 자라며 재배도 해왔는데, 흉년에 먹는 구황식물로 아주 좋습니다. 성질이 온화하고 감미로워 먹기에도 좋아 뿌리를 캐서 쪄 먹거나 가루를 내어 국수를 만들어 먹었습니다.
신라시대에 마에 관련된 재미난 얘기가 있지요. 백제의 가난한 총각이었던 서동(薯童)이 선화공주가 절세의 미인이라는 소문을 듣고 신라에 가서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향가가 <서동요(薯童謠)>입니다. “선화공주님은 밤마다 서동을 찾아간다네”라는 노래가 서라벌에 퍼지게 되자 진평왕은 귀여운 셋째 딸을 왕궁 밖으로 내쫓을 수밖에 없었고, 서동이 공주를 모시기로 해서 친해져 혼인까지 하게 되었지요. 이때 서동이 아이들에게 나눠준 것이 마로, 맛이 좋았기에 아이들은 시키는 대로 노래를 불렀던 것입니다.
선화공주와 혼인한 서동은 누구인가?
서동은 공주가 쫓겨 나올 때 왕비가 준 많은 금은보화를 활용해서 크게 성공하여 결국 백제의 무왕이 되었습니다. 서동은 요즘의 꽃미남 같은 멋진 총각이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를 캐어 팔아서 먹고살았으니 늘 등산을 한 데다, 마를 비롯하여 깊은 산속에 있는 좋은 약이 되는 음식들을 먹었을 것이니 아주 건강하고 힘도 좋았겠지요.
서동은 원래 백제의 왕자인 부여 장(夫餘 璋)이었는데, 복잡한 사정으로 궁 밖에 나와 살게 되었지만 어려서부터 재주가 뛰어나고 도량이 넓었다고 합니다. 사실 이 얘기는 전설이고, 실제로는 선화공주가 백제의 왕자와 정략결혼을 했던 것이지요.
마에 산약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
옛날에 강한 나라의 침략을 받은 약한 나라의 군대가 전투에서 크게 패하여 몇 천의 인마만 남아 산속으로 도주했습니다. 산세가 험하여 강국의 군대는 추격하지 못하고 산 주위를 포위하고는 약소국의 패잔병들이 항복하기를 기다렸습니다.
몇 달이 지나 양식이 떨어질 때가 되었지만 미동이 없었고, 8개월이 지나자 강국의 장군은 약소국의 장졸 대부분이 굶어 죽었거나 겨우 연명하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는 긴장을 풀고 매일 음주가무를 즐기며 지냈습니다. 어느 날 밤 강국의 군대가 잠에 취해 있을 때 돌연히 산속에서 약소국의 군대가 말을 타고 힘차게 내려오니, 강국의 군대는 크게 패하여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산속에서 병사들이 강해지고 말이 씩씩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장졸들은 먹을 것이 떨어져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산속에 자라는 풀의 뿌리줄기를 캐어 먹었는데, 맛이 괜찮고 허기도 없어져 매일 먹었고 말에게는 그 잎을 먹였습니다. 목숨을 구하고 큰 승리를 얻게 해준 그 풀을 기억하기 위해 이름을 산우(山遇)라고 지었는데, 산속에서 양식을 찾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뜻입니다.
이로부터 음식으로 먹게 되었는데, 계속 먹어보니 양식과 마찬가지로 기운을 내게 할 뿐만 아니라 비·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폐와 신을 보충하는 효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산약(山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 산에 나는 토란 같다고 산우(山芋)라는 이름도 있지요.
마는 어떤 효능이 있을까?
중간 성질로서 신장의 음기를 보충하는 보약입니다. 허약하거나 과로한 몸을 회복시키는 효과가 크고, 허약하여 열이 조금씩 오르는 것을 내려줍니다. 특히 심한 만성 허약성 질병으로 난치에 속하는 오로·육극(六極)·칠상을 치료한다고 했으니 최고의 보약이자 자양 강장제이지요.
마를 꾸준히 오래 복용하면 귀와 눈이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허기를 몰라 장수하게 된다고 했으니 노화 방지약입니다. 또한 피로하고 수척할 때 마로 죽을 끓여 먹으면 좋습니다. 그러니 마는 산에서 나는 뱀장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의 자양 강장제인 것입니다. 소화 기능이 허약할 때 인삼과 같이 달여 먹으면 생기를 얻고 식욕이 증진되며, 설사로 기운이 떨어질 때 볶아서 가루로 만든 뒤 미음으로 먹으면 좋습니다.
마에 들어 있는 영양 성분은?
전분·단백질·지방을 비롯하여 알칼로이드인 디오스코린(dioscorin)·사포닌·타닌(tannin)·콜린(choline)·글리신(glycine)·세린(serine) 등이 들 어 있고 비타민과 철분·칼륨·마그네슘 등의 미네랄도 들어 있습니다. 동물실험에서 관상동맥 확장 및 관상동맥 혈류량 증가·장관 활동 자극·혈당 강하·항노화 작용 등이 밝혀졌습니다.
퇴계 선생이 추천한 보양 음식
마가 얼마나 좋은 약이 되는지는 이황 선생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서 보양 음식으로 꼽힌 것으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퇴계는 수많은 음식들 중에 8가지를 보양 음식으로 선정했는데, 그중에 마로 만든 음식이 3가지나 됩니다. 그 이유는 신장과 비장을 둘 다 보양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한의학에서 신장은 선천의 근본이고 비장은 후천의 근본인데, 마는 그 둘을 모두 보강해주기 때문에 중하게 여긴 것 같습니다. 마는 비·위장을 건실하게 보강하며 신장의 정기를 보익하고 아울러 폐의 기를 보익하는 효능도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면역 기능과 관계있는 장기는 폐·비·신이므로, 마는 면역 기능을 강하게 하는 효능이 있고 아울러 노화를 억제하는 장수 식품이 되는 것이지요.
마는 구체적으로 어떤 병증에 효과가 있을까?
비·위장과 대·소장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매우 큽니다. 비·위장이 허약하여 음식을 잘 먹지 못하고 권태감·무력감이 있는 경우에 좋고, 설사와 이질을 멎게 하기 때문에 허약해서 생긴 설사를 낫게 하는 처방에는 거의 들어갑니다. 마의 끈적끈적한 점액질에 뮤신(mucin)·아밀라아제 등의 소화 효소가 들어 있어 단백질·녹말의 소화를 돕고 위벽을 보호해줍니다.
또 폐의 음기를 보해주므로 폐가 허약해서 생기는 기침·가래·천식의 치료에도 활용됩니다. 소갈병, 즉 당뇨병의 치료에도 활용되고 있는데, 혈당을 떨어뜨리고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이 입증되었습니다. 또 피부와 모발에도 윤기를 주므로 피부와 머리카락에도 좋습니다. 신장의 정기가 부족해서 허리가 아프고 하체에 힘이 없으며 몸이 허약하고 정신력이 나약해지면서 자주 건망증을 나타낼 때 오래 복용하면 치유가 되면서 근육과 골격에 힘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신장의 정을 보충해주므로 정력제로도 매우 좋습니다. 끈적끈적한 점액질인 뮤신이 정액을 많게 합니다. 또 정자의 주요 성분이 되는 아르기닌(arginine)도 들어 있는데, 아르기닌은 음경의 발기에 중요한 작용을 하는 산화질소의 원료가 됩니다. 몸에서 정액이나 소변이 새어나가는 유정, 소변을 자주 찔끔거리는 유뇨는 물론이고 소변빈삭·요실금에도 효과적입니다.
마를 먹어온 특별한 사람들
조선의 왕과 중국의 황제가 자주 먹었습니다. 비·위장을 건실하게 하고 면역 기능을 돕는 처방으로 조선 왕실의 구선왕도고(九仙王道糕), 청나라 황궁의 청궁팔선고(淸宮八仙糕)와 건륭팔진고(乾隆八珍糕)라는 떡이 있었는데, 떡 처방에서 중심 역할을 하는 약재가 바로 마입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관노(官奴)의 아들이 마를 캐어 임금께 진상하고 벼슬을 받았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숙종실록>(1689년 1월 18일)에 “이동영이라는 사람이 마를 진상하고 영릉참봉에 제수되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신하들은 신분이 천한 관노의 아들이 상은(上恩)을 바라고 한 처사라고 반대하니, 참봉이 아닌 다른 상당한 자리로 옮기게 했다고 합니다. 당시 숙종이 29세였으니 아직 한창 나이였고 이미 부왕과 모후도 세상을 떠난 뒤였으므로 귀한 약재가 매우 절박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공이 가상하여 최말단 벼슬인 종9품의 참봉을 제수했던 것 같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먹었다는 마
마와 비슷한 약초로 마과에 속하는 얌(yam)이 있습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100m 세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시작으로 올림픽 3회 연속 100m·200m·400m 계주 3개 종목에서 3관왕을 차지하는 등 8개의 금메달로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 타이 기록을 세웠던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 선수가 즐겨 먹었던 것이 바로 얌이지요. 인구 260만 명에 불과한 조그마한 나라인 자메이카의 육상팀이 남녀 단거리 종목의 금메달을 석권한 요인 중에는 얌을 늘 먹는 것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세계 3대 장수촌인 에콰도르의 빌카밤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 중에 유카(yuca)라는 뿌리채소가 있습니다. 유카는 칡뿌리처럼 생긴 고구마라고 하는데, 겉은 갈색이지만 속은 흰색으로 우리나라의 마와 비슷합니다. 삶아 먹거나 과자·빵으로 만들어 먹기도 하고, 막걸리처럼 발효시켜 술을 만들어 마시기도 합니다.
얌이 육상 선수들에게 좋은 이유는?
얌은 자양 강장제로서 선수들이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얌은 단백질 함량이 50%나 되어 콩보다 많고, 노란색을 띠게 하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이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작용을 합니다. 볼트와 같은 운동선수에게 이로운 영양소가 전분과 칼륨인데, 얌에는 전분이 많아 뛰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주고 칼륨은 운동 중 다리에 근육 경련이 나는 것을 막고 근육과 신경이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해준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나는 마는 단백질 함량이 3% 정도여서 얌과는 큰 차이가 있긴 합니다.
마를 먹을 때 주의할 점은?
노인들에게 마가 좋은 것은 틀림없지만, 몸에 습기가 많아서 잘 붓거나 소화가 잘되지 않고 속이 더부룩하거나 뱃속에 덩어리가 쌓여 내려가지 않고 체한 경우에는 생으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 먹으면 기가 소통되지 못하고 막혀 병증이 유발되거나 악화될 수 있으니 굽거나 삶아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만 마는 설사를 막아주는 약이므로 대변이 단단하거나 변비가 있는 경우에는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변비가 있어 마를 먹을 수 없는 사람은 대신 호두·잣을 먹으면 됩니다. 호두와 잣은 모두 영양이 풍부하고 몸에 좋은 보약이지요. 물론 대변이 묽고 설사를 잘하는 경우에는 호두나 잣이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