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암호화폐가 현금이 되기 위한 3가지 조건과 기능 (feat. 라이트닝 네트워크)

돈공부

가상화폐를 의미하는 영어 표현인 ‘cryptocurrency’는 암호화를 뜻하는 ‘crypto’라는 단어와 화폐를 뜻하는 ‘currency’가 합쳐 만들어진 신조어입니다. 이처럼 용어 자체에 ‘화폐’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다 보니 ‘가상화폐가 화폐냐, 아니냐’ 하는 건 꽤 오래된 논쟁거리입니다.

미국에서 2017년 절찬리에 방영된 유명한 드라마 <굿 와이프(The good wife)>도 시즌3에서 비트코인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를 다루며 이 논쟁이 얼마나 잘 알려진 것인지 증명했습니다. 이 드라마 주인공인 변호사 얼리샤 플로릭은 비트코인을 발명했다는 익명의 의뢰인을 변호하게 됩니다. 극중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아마도 사토시 나카모토를 지칭하는 듯한 이 의뢰인은 개인이 새로운 통화를 만들 수 없다는 연방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미 재무부에 의해 기소됩니다.

이제 이 드라마에서 플로릭과 미 재무부측 변호사인 힉스가 벌이는 법정 공방을 간략하게 옮겨와보겠습니다. 힉스 변호사는 2011년 11월 18일 한 호텔에 묵었던 탬보어라는 투숙객을 증인으로 요청합니다. 힉스가 “숙박비를 어떻게 결제하셨나요?”라고 묻자 증인은 “비트코인”이라고 답한 뒤 당시 환율이 대략 1비트코인에 25달러여서 4.32비트코인을 냈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비트코인으로 객실에서 영화를 보고 초코바와 땅콩도 먹었다고 진술하죠. 그러자 힉스는 “그걸(비트코인) 통화로 쓰셨죠”라고 되물었고 탬보어는 그렇다고 인정합니다.

이번에는 얼리샤가 크라코프스키라는 이 호텔 지배인을 증인으로 내세웁니다. 이 지배인은 홍보를 위해 비트코인과 마일리지로 객실을 빌려주는 이벤트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얼리샤는 “(비트코인 말고) 마일리지로도 객실을 빌릴 수 있죠?”라고 물었고, 지배인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비트코인을 마일리지와 동일시함으로써 화폐가 아니라는 걸 부각시킨 셈이죠.

얼리샤가 “마일리지는 현금으로 취급 안 하시죠?”라고 묻자 지배인은 “네, 비트코인이나 마일리지를 보관하는 서랍은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비트코인으로 객실을 빌려주는 건) 마일리지와 객실을 교환하는 물물교환에 가깝죠?”라고 얼리샤가 묻자 지배인도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자 얼리샤는 “다른 말로 하면 통화가 아니라 상품이라는 거죠?”라고 재차 확인하고 지배인은 그렇다고 합니다.

이제 힉스 변호사가 지배인에게 반론합니다. “아마존에서 책을 구입한다면 호텔에서 받은 마일리지를 사용하실 겁니까?” 그러자 지배인은 “아뇨, 안 할 것 같네요”라고 답합니다. 이에 힉스는 “교환되지 않기 때문이죠?”라고 되묻습니다. 이어 “하지만 비트코인으로는 책을 살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묻죠. 지배인이 그렇다고 하자 힉스는 “비트코인은 교환 가능하니 통화죠?”라고 확인하듯 추가로 묻습니다.

이 모든 증인 진술을 잠자코 듣고 있던 드와이트 소벨 판사는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양측 질문을 단호하게 막고는 “바로 결론 내겠습니다. 비트코인은 통화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고는 의사봉을 세 차례 두드린 후에 판사석을 뜹니다.

참 명쾌합니다. 이 드라마 원작을 쓴 로버트 킹, 미셸 킹 부부가 비트코인을 신봉하는지, 비트코인에 투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킹 부부는 비트코인이 화폐라는 쪽에 손을 들어줍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드라마이다 보니 한쪽으로 결론을 내렸을 테지만, 현실은 그리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습니다. 가상화폐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화폐는 일단 사전적으로 ‘상품 가치를 매기는 척도이자 재화의 교환수단이 되는, 정부나 중앙은행이 발행한 지폐와 주화’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어떤 것이 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쌍방 간 교환의 매개체이자 표준화된 가치측정을 위한 계산 단위(=가치의 척도)이고, 오랜 기간 가치를 저장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어느 정도 해내곤 있지만, 아직도 화폐가 가진 가치교환이나 가치척도 기능은 제대로 해내기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너무 빨리, 너무 가파르게 가치가 급등락하는 가상화폐의 특성상 이를 가지고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고팔거나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매기는 일은 아무래도 수월치 않겠지요.

또한 비트코인 블록체인 상에서 거래 체결이 완료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데다 채굴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수수료 부담이 있다 보니 비트코인으로 커피 한 잔 사서 마시는 일도 아직은 만만치 않습니다. 각국 정부가 여전히 화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트코인으로 테슬라 전기차를 사려면 (비트코인투자 수익에 따른) 양도소득세까지 물어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가상화폐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비트코인조차도 아직까지는 화폐로서의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현 시점에서의 판단일 뿐, 앞으로 가상화폐가 어떤 지위를 가질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순 없습니다. 비트코인은 거래 처리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 등과 같은 기술적 해법을 이미 찾고 있습니다.

라이트닝 네트워크(Lightning Network)
: 10분마다 하나의 거래 블록을 생성하도록 설계된 비트코인의 거래 처리속도가 더디다 보니, 개별 거래를 별도 체인에서 처리한 뒤 결과 값만 블록체인에 기록하도록 함으로써 즉석 결제가 가능하도록 한 기술

높은 가격 변동성을 낮추기 위해 법정화폐나 실물자산과 연계해 가치를 안정화하는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과 같은 실험도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견제가 강하긴 해도,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인정한 엘살바도르 등 몇몇 국가에서의 실험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비트코인 초보자를 위한 꿀팁 정리
: 가상화폐가 화폐냐 아니냐 하는 논쟁은 1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초기 비트코인은 화폐라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기술적 진보로 인해 서서히 가상화폐를 실제 화폐나 현금처럼 쓸 수 있게 될 가능성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미 제한적으로는 가상화폐를 현금으로 사용하려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