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적은 말로,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쓰기.

써먹는 독서

 

'죽은 언어' 같은 것은 없다.

오직 '죽은 생각'이 있을 뿐이다.

언어만큼 살아 있고, 거침없고,

유동적인 것은 없다.

 

 

 갑자기 낯설고 이국적인 땅에 떨어졌다. 눈앞에는 낯설고 이국적인 여인이 한 명 서있다. 아주 매력적이지만 위험할 것 같은 여인이다. 내가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만난 여인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우시네요."

 여인은 내 말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는 정확히 안다.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이제 여인이 그 이유를(물론 아무 이유가 없을 수도 있지만) 들어보도록 귀를 기울이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오리엔테이션'이다. 여인이 이유를 받아들이고 더불어 나까지 받아들인다면, 그건 '설득'이다.

 

 

 종종 광고를 '인쇄된 구애'라고 말한다. 이 구애는 자꾸만 복잡해지고,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있다. 우리는 오늘날 크리에이티브 분야 종사자들이 마케팅과 광고가 요구하는 도전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직면한다. 똑같은 방법론을 사용하고, 똑같이 진부한 표현, 똑같이 지겨운 단어와 닳고 닳은 표현을 쓴다. 우리 중에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그냥 옷의 단추만 다른 것으로 바꾼다. 기존의 편견을 그대로 둔채 배치만 새롭게 바꾼다. 마음이 열려 있다고 하지만, 실상은 입만 열려 있다.

 

 피타고라스는 "사색이란 운반 중인 아이디어"라고 했다. 요즘 광고 중에 이 고전적 척도를 충족시키는 것이 얼마나 될까? '카피'를 편집할 게 아니라 그 카피를 만들어내는 '사고방식'을 편집해야 한다.

 

 광고 페이지에 사람과 제품만 가득 채워놓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광고에는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채워져야 한다.

 

 단순히 언어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말이 아니라 삶의 뿌리에서 나온 말로 채워야 한다. 말을 단련하는 법을 배우면 창의력을 키우는데 어마어마한 도움이 된다.

 

 어느 정도는 '누구나' 아직 손대지 않은 창의성의 저장고를 가지고 있다. 차분히 생각해보면 '독창성'이란 뭐 대단한 게 아니다. 그냥 보고, 듣고, 읽고, 기억한 것에 '나 자신'을 더하면 된다. 바로 그렇게 나 자신을 더해야 하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가치 있는 자원을 쌓아가는 일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무의식의 창고에 기억과 이미지들을 저장해 두어야만 신호를 줬을 때 곧장 그것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나이는 거의 무관하다. 광고는 '젊은이'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젊은 생각'의 비즈니스다. '몇 살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얼마나 대담한가'가 중요하다. '얼마나 기지 넘치고 회복력이 있느냐', '얼마나 용감하고 전염력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광고쟁이는 팩트'아이디어'로 바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감정'으로, 그 '감정'을 다시 '사람'으로, 그 사람을 '판매'로 바꾸어놓는 사람이다. 팩트를 아이디어로 바꾸려면 무언가를 봤을 때 그게 팩트임을 알아보아야 한다. 아이디어를 감정으로 바꾸려면 마음 속에 품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사갈까'라는 질문의 답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게 뭘까?'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이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어떻게 해야 사람을 움직이고 상품을 움직일까?'

 

 제품 속에서 드라마를 찾고 싶다면 깊이 파보면 된다. 드라마는 거기 있다. '사라지지 않는 감정'을 이용하라. '이중 교배'를 사용하라. 차용하고 변형하라. 늘이거나 줄여라. 흔한 것을 흔치 않은 곳에 놓아라.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오래된 것을 새롭게 조명하기라도 해라. 그렇게 새 생명을 주고, 새 흥미를 일으키고, 새 색깔을 입히고, 새 이미지를 만들어라.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다음의 '아이디어 도출 4단계'가 생각을 강화시키는 데 큰 도움을 줄 매커니즘이라 본다.

 

 1. 축적 : 팩트란 팩트는 모로지 쓸어담고 저장한다. 쓸 수 있는 모든 탄환을 장전해 당면한 구체적 주제를 상대한다. 그것들을 '창고부'에 넘긴다.

 

 2. 사고 : 곰곰이 생각한다. 마음의 입으로 충분히 음미한 다음,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려본다. 체로 치고 빠져나오는 것을 살핀다.

 

 3. 잉태 : 산고를 겪는 중이지만 스스로는 알 수 없다.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을 때 무의식을 자극하는 최고의 방법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일로 부산을 떨어야 한다.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라.

 

 4. 희열 : 찾았다. 아이디어가 샘솟기 시작한다. 미처 다 받아 적을 수가 없을 정도다.

 

 틀림없는 성공 공식처럼 들리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크리에이터마다 자신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의 광고'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말'이 아닌 '아이디어'로 소통해야 한다. '이미지'를 가지고 생각해야 한다. 고도로 압축된 언어를 써야 한다. 진실을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야 한다. 대형 망치로 때려 박을 것이 아니라. '공손한 설득'으로 메세지를 포장해야 한다.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평판'을 만들어가는 중임을 자각해야 한다. 제품 퍼스널리티(product personality)를 창조해야 한다. 광고 하나하나를 그저 오늘 하루를 위한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허물어지지 않는 '벽돌'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감히 남들과 다들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 내 개성을 투영해야 한다.

 

 훌륭한 카피라이터는 경제부 기자이면서 세일즈맨이어야 한다. 정말로 일류 카피라이터라면 겉으로는 낭만주의자이면서 속으로는 현실주의자여야 한다. 실제로 그는 휴머니스트이자 현실주의자, 그리고 최고의 세일즈맨이어야 한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복합성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주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최고의 카피라이터는 감수성이 풍부하면서 동시에 현명해야 한다. 현실감각에 맞게 쓸 수 있는 이미지 감각이 있어야 한다.

 

 카피라이터는 다음의 3가지 기초가 튼튼하게 잡혀있어야 한다.

 

 1. 팩트! 뭐든 알고 시작하라.

 2. 감정! 제품을 팔고 싶으면 마음을 움직여라.

 3. 기법! 형식 때문에 정작 중요한 것이 가려지면 안 된다.

 

 

 역사상 가장 감동적인 문학작품은 전 세계 베스트셀러 1위인 '성경'이다. 성경에는 6,000자 정도의 단어가 사용됐다. 하지만 오늘날 영어는 50만 단어를 자랑하고, 매년 약 5,000개씩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니 언어가 사람 못지 않게 부단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같은 단어로 다른 뜻을 의미할 수 있다.

 

 카피란 단어를 조합하는 일이다. 사람들이 이성만 먹고 살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희망을 먹고 산다. 사람들이 믿는 것은 미래일 지 모른다. 그러나 여러분의 카피에 담긴, 그들의 삶에 벌어질 일은 뭐가 되었든 '지금, 여기'에서 일어난다. 현재형 문장은 힘이 있다.

 

 전형적인 카피라이터는 카피를 '말'이라 생각하고, 전형적인 아트디렉터는 카피를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컨셉트이다. 카피는 말도 아니고 그림도 아니다. 카피는 '전략'이다. 카피는 '도덕적 설득'이다. 카피는 '인간 행동'이다. 카피는 소비자를 지금 있는 곳에서 내가 보내고 싶은 곳으로 보낸다. 카피는 내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소비자의 머릿속으로 옮긴다. 카피는 소비자에게 내가 파는 물건의 값어치(가격)보다 그 물건을 더 많이 원하게 만든다. 카피는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따라서 광고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일부러 빼놓은 것까지도) 카피다.

 

 

 다음 10가지 항목의 카피 지침서를 제안하며 이 글을 끝내고자 한다.

 

 1. 명령조의 '해라', '하지마라' 같은 말로 방해하지 말고, 광고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놓아둬라.

 

 2. 잔재주는 집어치우고 진실을 고수하라. 다만 그 진실을 '흥미진진한 진실'로 만들어라.

 

 3. 경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그러나 마음의 노래에도 귀를 기울여라. 그게 바로 판매를 움직이는 멜로디다.

 

 4. 감히 남들과 다른 것을 해보라. '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루한 세상에 참신한 일을 해보기 위해서다.

 

 5. 카피용 목발은 내다 버리고 내 두 발로 당당히 서라.

 

 6. 내 상상과 발명에 의존하라. 내가 가진 창의적 출처와 자원에 의존하라.

 

 7. 카피 쓰기를 그만두어야 카피 쓰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8. 똑똑한 대중을 모욕함으로써 똑똑한 나 자신까지 모욕하지 마라.

 

 9. 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려는 말'에 힘을 줘라.

 

 10. 요약하면, 줏대 있는 카피를 써라. 그리고 용기를 갖고 그 카피를 위해 싸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