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음흉함

써먹는 독서

아는 자는 말하지 않고

말하는 자는 알지 못한다.

- 노 자 -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침묵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과 강인한 사람은

침묵을 통해 휴식한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사회비평가인 업튼 싱클레어는 1934년의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 입후보했다. 그는 선거유세에서 특이한 행보를 보였는데, 선거 전에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나는 빈곤 문제를 어떻게 종식시켰나?>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을 출간한 것이다.

 

 싱클레어는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가정 하에 자기가 주지사로 재직하면서 입법한 탁월한 정책들을 과거형으로 서술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선거에 이기지 못했고 주지사가 되지 못했다.

 

 이 책의 출간은 작가로서 자기가 가진 최대의 자산을 지렛대로 삼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전통적인 선거유세 형식에서는 벗어난 매우 특이한 시도였다. 싱클레어는 본인이 작가로서 다른 후보들이 할 수 없는 특별한 방식으로 대중과 소통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의 유세는 승산이 없었으며 그 책은 선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다만 이 책은 유권자가 아닌 싱클레어 본인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싱클레어는 무려 25만 표 차이로, 득표율 10퍼센트 포인트 이상의 차이로 낙선했다. 그는 어쩌면 최초의 현대적인 선거라고 할 수도 있는 그 선거에서 철저하게 패배했고 선거유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분명했다. 그의 책이 현실이 선거유세를 앞질렀으며 책으로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넘으려던 그의 의지는 무너진 것이다.

 

 정치인은 대부분 ''로써 싱클레어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앞질러버린다. 말과 선전으로 행동을 대신하려는 것, 이것은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유혹이다.

 

 페이스북의 빈 글 박스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라고 묻고 트위터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라며 손짓한다. 텀블러 Tumnlr가 또 링크드인 linked in이 속삭인다. 받은 편지함이, 스마트폰이 그리고 당신이 방금 읽은 기사 하단의 댓글 란이 뭐라도 한 마디 해달라고 당신을 부른다.

 

 비어 있는 공간들은 우리의 생각과 사진으로, 또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채워지기를 원한다. 우리가 지금 막 하려고 하는 것, 해야 하거나 할 수 있는 것,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들로 가득해지기를 열망한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발전한 기술이 당신더러 말을 하라고 요구하고, 옆구리를 찌르고 또 졸라댄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소셜미디어에 적극적이다. SNS 상에는 각자 자기의 일이 얼마나 잘 돌아가고 있는지,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드러내는 말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보이는 말들이 진실인 경우는 드물다. 눈에 보이는 활자 뒤에는 '나도 현실과 싸우고 있고, 지금 너무 힘들어. 나도 모르겠다고'와 같은 속내가 숨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출반점에 서 있을 때 긴장하고 흥분하며, 위로와 격려를 필요로 한다. 내가 나 스스로를 다독여보지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이 아니라 ''에서 위안을 구하려고 한다. 타인의 믿음과 확신의 말들을 듣고 싶어 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약한 측면이다. 결국 최소한의 것을 하면서 가능한 한 밖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신뢰를 받으려고 하는데, 이런 측면을 바로 에고라고 부른다.

 

 작가이자 가십 전문 사이트인 고커닷컴 Gawker.com의 블로거이기도 했던 에밀리 굴드는 2년 동안 소설을 내기 위해 애를 쓰면서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 비록 그녀는 엄청난 돈을 벌고 성공하긴 했지만 거기에서 더 앞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왜 그랬을까? '인터넷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느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그게 이유였다.

 

 "사실 나는 2010년에 했던 것 말고는 그 어떤 것도 기억할 수 없다. 텀블러를 했고 트위터를 했으며 또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돈 한 푼 버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마치 일을 하는 것처럼 느꼈다. 이런 습관을 다양한 방식으로 나 자신에게 합리화했다.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중이라고 합리화했고, 또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이 창의적인 행동이라고 합리화했다. 누군가 올린 게시물에 댓글을 다는 일을 '큐레이팅'하는 것이며 창의적인 행동이라고 합리화했다."

 

 즉, 그녀는 소설 쓰기에 집중하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사업이나 프로젝트 때문에 겁에 질리거나 압도되었을 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했던 것이다. 자기가 열심히 매달려서 작업한다고 생각했던 소설은 실제로는 완전히 중단된 상태였다. 그것도 꼬박 1년 동안이나 말이다.

 

 실제로 글을 쓰는 것보다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예술과 문학 등에 관련된 흥미로운 일들을 하는 것이 훨씬 쉽다. 최근에 어떤 사람은 <소설 쓰기>라는 책을 펴냈는데, 이 책은 실제로는 소설을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한 작가들의 SNS 게시물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집필은 다른 많은 창의적인 행위와 마찬가지로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가만히 자기 자신에, 사물에 몰입해야 하는 일이다. 사실 우리가 수행하는 많은 가치로운 일들은 그것이 새로운 회사를 세우는 것이든 혹은 어떤 기술을 숙달하는 것이든 간에 고통스러울 정도로 까다롭고 어렵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언제나 쉽다.

 

 우리는 무시당하는 것을 죽음으로 생각하고 침묵을 약함을 드러내는 기호로 인식하는 듯하다. 그래서 마치 자기 목숨이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말하고 말하고 또 말한다. 하지만 사실 침묵은 힘이 세다. 특히 어떤 여정이든 간에 처음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침묵에 대해 이야기했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경고했다.

 

 "단순한 잡담은 실질적인 대화를 앞지르며, 생각 중인 것을 입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실제 행동을 선수 침으로써 그 행위를 약화시킨다." 

 

바로 이것이 말에 내포되어 있는 음흉함이다. 심지어 어린아이조차도 의미 없는 잡담을 할 줄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를 선전하고 무언가를 남에게 파는 데 나름대로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침묵이다.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의미 없는 대화로부터 떨어져 있도록 하는 능력, 남들의 인정 없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능력이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과 강인한 사람은 침묵을 통해 휴식한다.

 

 셔먼은 어떤 일을 실제로 해야 하거나 생각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절대로 그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 자동차 브랜드였던 오번 Auburm의 위대한 야구 선수이자 미식축구 선수 보 잭슨은 NFL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목되고 싶었고 또 MLB에서도 뛰고 싶었다. 그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자기 여자 친구 딱 한 사람에게만 했다. 고대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 역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보물은 말을 아끼는 혀'라고 말했다.

 

 말은 사람을 고갈시킨다. 말과 행동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 어떤 일을 하는 동안 그에 대해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일과 관련된 통찰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 일에 대해서 생각하고 설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마치 그 일을 거의 다 이룬 것처럼 느끼기 시작한다.

 

 게다가 주어진 일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결과는 그만큼 더 불확실해서 자꾸 얘기를 하게 되고, 또 그만큼 실제 행동에서는 점점 더 멀어진다. 심지어 그 일을 보류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인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실제로 진행해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소설가 스티브 프레스필드가 '저항'이라고 불렀던 것, 일을 해나가는 중에 부딪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데 꼭 필요한 에너지를 빼앗아간다. 어떤 일을 온전하게 달성하려면 1백 퍼센트의 노력이 필요한데, 말을 함으로써 이 노력의 상당 부분이 일찌감치 소모되어 버린다는 말이다.

 

 

 영화배우 말론 브란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허함은 끔찍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두려움,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을 몰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말한다. 그 속에서 마주치는 공허를 피하기 위해서도 말을 하고, 침묵이 필요한 상황에서조차 그 고요함을 적대적으로 느끼고 말을 한다.

 

 특히 일을 해나가면서 스스로와 일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 에고는 거짓말을 해서라도 내면의 흔들림을 잠재우려고 애쓴다. 하지만 에고에 대한 이런 허용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 지독하게 해롭다.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업적이나 예술적 성과는 그런 말들과 분주함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공허나 불안을 정면으로 맞서는 데에서 탄생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문제에 부딪치든 당신은 선택해야 한다.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말함으로써 얻은 평온한 휴식과 유예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선택할 것인가?

 

 투쟁하기로 선택한 이들은 말하는 대신 구석에서 조용하게 일할 것이다. 내면의 소용돌이를 원료로 삼아서 실질적인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평온함으로 향할 것이다.

 

그들은 행동하기 전에 남들에게 먼저 인정받으려는 충동을 무시한다. 혹은 남의 시선을 즐기는 사람들이 결국 자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초조해하지 않는다. 사실 진짜 일을 하느라 바빠서 다른 것은 하지도 못한다. 그들이 입을 열 때는 애초에 의도했던 목적을 이미 달성한 때이다.

 

 일과 잡담 사이의 유일한 진실은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서로 칭찬하면서 희희낙락하든 말든 내버려둬라. 잡담을 통해서 당신의 에너지가 조금씩 새어나갈 수 있는 구멍을 아예 막아버려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봐라.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예전에 비해서 훨씬 나아질 수 있다.